STRANGE CITY

투명 (191223)

2020. 1. 23. 00:00 | 소설/언델타룬

휴먼즈 교류전에 가져간 규격 사이즈의 글 엽서 전문입니다. 차라 시점.




투명(透明)

1. 물 따위가 속까지 환히 비치도록 맑음.

2. 사람의 말이나 태도, 펼쳐진 상황 따위가 분명함.

3. 앞으로의 움직임이나 미래의 전망 따위가 예측할 수 있게 분명함.


 차오르는 파도로 목이 막혔다. 인사가 닿기도 전에 부스러지는 경험을 했다. 밖으로 흐르지 못하고 고인 문장이 속을 찔렀다. 차라리 물거품이 되고 싶을 만큼 온몸이 아렸다. 제발 날 꺼내줘! 더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해변은 아주 멀었고, 사람들을 바다를 볼 줄 몰랐다. 그들은 그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석류알을 입에 넣고 있었다. 나는 분연히 비참해졌다.

 발을 붙잡는 파도 위에서 걷는다. 구멍난 발은 붉은 바다에서도 쉽게 휘청인다. 힘없이 흔들릴 수록, 그들은 내가 춤을 추는 줄 안다. 그들의 박수와 미소는 향락의 일부다. 무지를 숨기고 타인을 흉내내는 과시의 일종이다. 나는 유명한 공연의 우아한 주인공처럼 고개를 치켜세우며 그들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끝에는 절벽이 있고 거기에는 그들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걷고 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걷는다. 내게 질린 이들이 서서히 나를 외면하고 흩어진다.

 비로소 절벽에 다다르니 아무도 없다. 나를 떠미는 고도의 바람과 얼기설기한 덩굴 뿐. 븕은 발에 짓눌려, 꽃밭은 온통 상해 있다. 상한 꽃을 물고 뛰어내리자 심장에서 불꽃이 인다. 마침내 뜨거운 것이 나를 집어삼킨다.

 이제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한다.




해설

  • 투명(透明)이라는 제목은 사전에서 설명하는 세가지 의미를 전부 담았습니다. 차라에게는 타인의 태도와 자신의 상황,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판단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차라는 정말 투명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 사람들은 바다를 볼 줄 모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다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고통속의 바다에 휩쓸릴 일 없이 해변에 있을 것이(라고 여기)니까요바다와 해변은 이어져 있는데도요. 차라가 파도에서 휘청이며 걸어나올 때, 사람들은 차라가 춤을 추는 줄 알고 바라보지만 바다 자체를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 석류알은 성경에서 풍요, 자비, 영광을 상징합니다. 랍비들은 많은 석류알을 사람의 수많은 선행에 비유했다고 합니다. 해변의 사람들은 오직 서로를 위해서 석류알을 나눕니다. 그들 사이에 있을 수 없는 차라는 자신을 제외한 채 공유되는 풍요와 자비를 바라보며 비참해집니다.

  • 사람들은 고통에 휘청이는 차라가 춤을 추고 있다고 여기고 박수합니다. 그들은 차라의 상황을 모릅니다. 어쩌면 춤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자도, 다른 이들이 왜 박수하는지 몰라 의문인 자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박수하는 상황에서 그들 중 누구도 질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기는 두려운 일이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는 것처럼, 옆 사람을 흉내내며 즐깁니다.